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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재태국 한인회장 임부순

    by info@jobkoreanews.com on Dec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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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재태국 한인회 60주년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창기에 태국에서 살게 돤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1941년에 일어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은 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폴,태국,미얀마를 점령해 나갔지만,

    1942년 이후 연합국 반격으로 해상 보급로가 위협받자 육로를 통해 보급품을  공급하기 위해 밀립과 계곡을 관통하는 비밀철도를 놓았다.

    그것은 태국의 논프라독과 미얀마의 탄비자야의 418km를 연결하는 철도였는데,방콕에서 깐차나부리로 통과하는 것이 가장 최단거리였지만,깐차나부리에 있는 콰이강의 다리를 놓는것이 가장 큰 난제였다.

    이난제를 풀기위해 일본은 연합군 포로들은 다리를 놓게 하였고 식민지인 우리나라 사람은 연합군 포로들의 감시요원이 되게 하였다.이는 포로들의 일본군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을 한국인에게 돌리기 위한 일본인들의 계획된 수법이었다.


    (동영상으로 시청하세요)


    일본군은 1942년 4월-5월까지 우리나라에서 영어할줄하는 청년들 3000명을 특별 징용하여 군속으로 모았고,그들에게 통역,서무보조,경계근무(포로감시),취사등의 일을 시켰다.

    특히 영어를 잘하는 300명을 따로 뽑아서 가장 난공사 지역인 콰이강의 다리 공사 현장인 제4포로 수용소 와 인근 수용소에 배치하여 연합군 포로들을 담당하게 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나먼 이국 태국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던중 1945년8월15일,일본은 무조건 항복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지만 막상 그들에게는 귀국선을 탈 여비조차 없었다.

    그들은  쌀도 많고 인심도 좋아 태국이 동남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한 사람씩 모여 아유타야에 남아 생활 터전을 이루게 되었다.이들이 바로 원로 교민이신 교민1세대들이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이루고 타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서로 의지하고 보듬고 살고자 1964년"야자수회"를 조직하였고 이경손씨가 압도적으로 초대 교민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부회장은 유엔기구에서 일하던 김석건씨,해운공사 태국지사당이였던 진기복씨가 초대 감사직을 맡게 되었다.

    초대 회장은 영화감독으로 한국에서 춘희,숙명난자전,장한몽,심청전 등의 각본을 썼고,태국으로 옮겨 영어교사 생활을 10여년 동안 하다가 1976년 방콕에서 작고했다.

    1965년에 박재기씨가 제 2대 한인 회장으로 추대되어 10여년을 한인회장직을 역임했다.그는 일본군에 학병으로 끌려와 콰이강의 전투에 참전하였다.한인 토요학교 설립,수쿰빗 소이 18에 있는 한인회관 건물 구입했다.

    현재 재태국 한인회 회장은 제30대 임부순 회장이다.그는 1984년 태국으로와 현재 참치수입,한인그로서리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재태국 한인회 60주년해이다.


    재태국1.png


    재태국.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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