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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승건 칼럼>

    애틀랜타 총영사관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왜, 동남부 한인체육대회에서 총영사 축사가 두번째 순서죠. 첫번째로 해야 하지 않나요." 

    나는 한동안 답변을 못하고 멍한 상태였다. “다음부턴 미리 저희와 상의 했으면 합니다” 총영사관은 어떤 의미로 전화를 한 것일까?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라 어디선가도 총영사 축사가 첫번째가 아니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내게 걸려온 전화가 전달하는 의미는 총영사라는 직책이 한인사회를 지배하는 서열 첫 번째라는 인식을 정확히 인지하라는 간접적인 지시(?) 인지도 모른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관할하는 지역이 동남부 5개주와 플로리다주를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동남부 25만 한인까지도 관할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마치 관할하는 지역의 총독부 총독이라도 된듯 관할이라는 표현을 빌미로 한인사회 리더들과 한인들을 발 아래로 내려다 보는 시대착오적 언행은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갑질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을 언론과 방송을 통해 접해 보았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갖는 존재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앞에 허리를 굽히고 예우해 주는 모습에 도취되어, 자신의 역할은 형식적인 논리에 빠져 오직 높은 곳만 향해 직진하는 단순 사고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유독 김영준 총영사는 자신에 대한 예우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며, 외교관으로 표정관리의 중요성에 노련함이 부족한 편이다. 

    또한 역대 어느 총영사에 비해서 자신의 실적(?)을 표현하고 강조하는데 적극적이다. 

    마치 총영사관을 자신의 사기업(?)처럼 경영하며 실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런 가운데 한인사회 단체장들 사이에서 총영사관이 애지중지하는 단체는 민주평통 이라는 우수꽝스런 이야기는 흔하게 들려 온다. 

    오죽하면 민주평통 애틀랜타협의회를 총영사관의 딸랑딸랑 방울 단체라는 이야기가 한인사회에 회자되고 있을까 싶다. 

    총영사관이 최근 주최한 3.1절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리셉션 행사도 참석자들에게 한끼 식사를 제공한 것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행사인지 모른다는 반응이 많다. 

    당연히 국민의 혈세 수만달러가 지출된  소중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100주년의 의미를 행사속에서 찿아 볼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또한 100주년 기념 리셉션에 미 주류사회 저명인사를 대거 초대 한다며, 동남부 5개주를 관할(?) 대표하는 동남부 한인회연합회에는 단 두장의 초대장을 보내는 상식이하의 기획력도 보여 주었다. 

    차세대 젊은이들의 축제의 장인 동남부 한인체육대회에 참석한 총영사의 축사도 영어로 연설하는 관심과 성의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한국 정부가 한인사회에 수여하는 유공포상자 선정도 총영사관이 특정인들과 밀실(?) 논의로 이미 결정해 놓고 형식적인 심사를 한다며, 단체장들을 허수아비로 취급한다는 불만이 지배적이다. 

    총영사관이 한인사회를 위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며 균형잡힌 무게 중심이 되어야지, 한쪽으로 치우치는 쏠림 현상을 한인사회가 인식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영사관이 입맛에 맛는 한쪽만 편애하며 한인사회를 편가르는 단초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한인사회 자국민들의 권리와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외교관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특혜만 누리고 일부 단체와 한인들에게 상처를 주고,블랙리스트(?) 처럼 낙인을 찍어서는 안된다. 

    한인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총영사관으로 부터 상처 받은 한인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그들 가슴속에 응어리져 남아 있다. 

    특별히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다. 그들이 표현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나라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한인사회가 던지는 객관적인 시각속에 사심없는 비판일때 총영사관도 비판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몸에 익혀야 할 필요성이 있다. 

    비판을 수용할줄 아는 자세에서 수용된 비판이야 말로, 그 비판의 출발점이 어디냐를 불문하고 총영사관의 역할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한인사회가 성장해 가고 의식이 점차 깨어가면서 누구도 비판과 견제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는 것이 필연적인 흐름이라면, 총영사관 역시 한인사회를 바라보는 균형잡힌 올바른 해안이 필요하다. 

    비판을 받는 대상들이 그 비판을 건전하게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한인사회의 질적 향상이 멈춤과 동시 한인사회는 무엇을 잘 한건지 무엇을 못 한건지 가늠할수 없는 불확실성의 혼돈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현재를 보내고 있다.

    총영사관이 원칙과 원리보다는 기능과 요령에 치우치는 모호한 모습을 보인다면, 뚜렷한 색깔 없이 ‘좋은 것이 좋은 것’ ‘원만한 것이 좋은 것’으로 한인사회의 힘찬 동력을 제자리에 멈추게 하는 허약한 보호색으로 채색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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